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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 : 25 ~ 26 절 묵상

הלך 2025.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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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생명의 계보

본문 요약

창세기 4장 25절부터 26절은 가인과 아벨 사건 이후 아담과 하와에게 다시 자녀가 주어지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아담은 하와와 동침하여 셋을 낳고, 하와는 그 이름을 짓고 하나님이 아벨 대신 다른 씨를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셋에게는 에노스라는 아들이 태어나고, 이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 짧은 본문은 하나님의 회복의 계획과 경건한 계보의 출발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의 구조

  1. 아담과 하와의 또 다른 자녀, 셋 (4:25)
  2. 셋의 이름과 하와의 신앙 고백 (4:25)
  3. 에노스의 출생과 예배의 회복 (4:26)

아담과 하와의 또 다른 자녀, 셋 (4:25)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아담과 하와의 가정은 깊은 상실과 슬픔에 빠졌을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던 아들이었고, 그가 죽음으로써 경건의 계보는 끊어질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자녀를 허락하십니다.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라는 구절은 단순히 또 하나의 출산 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말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끊어진 것처럼 보였던 생명의 계보는 다시 이어지고, 하나님은 인간의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피워 올리십니다. 셋의 이름에는 ‘대신하다’ 또는 ‘놓이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단지 이름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와는 셋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위로를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가인으로 인해 무너졌던 가정의 질서와 영적인 계보가 셋을 통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이 죽은 자리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다시 생명을 주십니다. 이는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셋의 탄생은 단지 또 하나의 자녀가 태어났다는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이어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줄을 끊지 않으시고, 죄와 죽음 가운데서도 구속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십니다.

셋의 이름과 하와의 신앙 고백 (4:25)

하와는 셋을 낳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다른 씨를 주셨다” 이 고백은 단순한 출산의 기쁨을 넘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하와는 이 고통스러운 삶의 역사 가운데 여전히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자신의 삶을 주관하고 계심을 인정합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과, 다른 아들이 그를 죽였다는 참혹한 상실감 속에서 하와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하나님이 새로운 씨를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를 고백합니다. 여자의 씨는 창세기 3장에서 이미 언급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와는 셋을 통해 그 약속이 이어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와의 고백은 단순한 생물학적 출산을 넘어서, 신앙의 계보가 다시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셋의 탄생을 통해 이어질 것입니다. 하와는 이 구속의 언약을 가슴에 품고, 셋을 통해 다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붙듭니다. 죄로 인해 무너진 가정과 죽음으로 끊어진 계보 속에서도 하나님은 다시 생명의 씨를 주십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구속의 일은 멈추지 않음을 선포합니다. 하와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본 것이며, 자신의 삶이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실패를 넘어섭니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와의 고백은 믿음의 씨앗이며,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신앙의 외침입니다.

에노스의 출생과 예배의 회복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합니다. 에노스는 ‘인간’, 혹은 ‘연약한 자’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담 이후 인간은 죄로 인해 타락하였고, 그 연약함과 죽음의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런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을 다시 부르게 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구절은 이 짧은 본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변화의 선언입니다. 이것은 단지 누군가가 기도를 시작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공적인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한 이후, 하나님을 피하고 숨고 외면하던 시대에서 이제 다시 하나님을 찾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분의 권위 앞에 서며,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다시 내어드리는 행위입니다. 경건한 계보가 셋과 에노스를 통해 시작되고, 그들로부터 신앙의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이것은 인류에게 있어 놀라운 회복의 시작입니다. 가인의 계보는 도시에 뿌리를 두고 인간 중심의 문화와 폭력으로 이어졌다면, 셋의 계보는 하나님을 부르며 예배하는 삶으로 연결됩니다. 셋의 가문은 단지 생물학적 계보가 아니라, 신앙의 유산이 되는 계보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작을 하실 때 반드시 예배를 회복하시고, 신앙의 공동체를 세우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죄와 죽음,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절망 속에서 피어납니다. 인간은 완전할 때보다 부족할 때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게 됩니다. 에노스의 시대는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대였습니다.

결론

창세기 4장 25절부터 26절은 짧지만 강력한 회복의 선언입니다. 아벨이 죽고, 가인이 저주받고, 인간 문명이 죄와 폭력으로 타락해 가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은 다시 생명의 줄을 이어가십니다. 셋의 탄생은 단순한 자녀 출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와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이 대신 다른 씨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셋의 아들 에노스의 시대에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고, 이는 인간의 타락 이후 처음으로 회복된 예배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짧은 두 절은 구속의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며, 사람의 죄가 하나님의 뜻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역사는 실패와 죄로 점철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거기서도 새로운 길을 내십니다. 셋과 에노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최초의 경건한 계보이며, 이들의 삶은 이후 노아와 아브라함, 다윗,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믿음의 줄기를 이룹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깨어졌고, 소망이 사라진 듯 보여도,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생명의 씨를 심으시고, 예배를 회복시키시며, 경건한 자손을 일으키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하나님은 늘 길을 여십니다.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그 외침은 오늘도 하나님의 귀에 닿아 있으며, 그 부르짖음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은 다시 회복의 일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입술, 하나님을 기억하는 가정,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있는 한, 하나님의 구속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창세기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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