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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 : 12 ~ 22 절 묵상

הלך 202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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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 속에서도 평화를 택한 믿음

본문 요약

이삭은 기근의 땅 그랄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 큰 농사의 결실을 거두고 크게 번성합니다. 그러나 이 번성은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와 갈등을 불러오며, 그들은 이삭의 우물을 메우고 그를 내쫓습니다. 이삭은 그 상황 속에서도 다투지 않고 계속 양보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갑니다. 마침내 그는 다툼 없는 넓은 공간에서 우물을 발견하고 여호와께서 자리를 넓히셨다고 고백합니다. 이삭은 다툼보다는 평화를 택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넓은 곳과 안식을 허락하십니다.

본문의 구조

  1. 이삭이 복을 받아 번성함 (12절–14절)
  2.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와 우물 분쟁 (15절–20절)
  3. 이삭의 양보와 평화의 우물 (21절–22절)

이삭이 복을 받아 번성함

기근의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랄에 머물며 순종했던 이삭은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복을 받게 됩니다. 그는 그 땅에서 농사를 짓고, 그 해에 백 배의 수확을 거두는 복을 경험합니다. 그 땅은 그의 조상이 낯선 이방인으로 거주하던 곳이었고, 본래 풍요롭다고 할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하나님의 복은 환경을 초월해 역사하셨습니다. 사람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축복이 더 크다는 진리를 이삭은 삶으로 증명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은과 금이 아닌 땅을 통해 복을 주셨고, 그 땅에서 수확을 거두게 하심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생명을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삭은 점점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됩니다. 그의 소유는 양과 소, 종들이 많았고, 이는 단지 경제적 부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그 자손을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실제적인 성취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이 이제 그의 아들 이삭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이 그에게 임하자 곧이어 시기와 대적이 따르게 됩니다. 축복은 기쁨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갈등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잘 되는 것을 항상 반기지 않으며, 특히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의 번성을 마냥 축복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가 가진 부요함과 영향력을 위협으로 느끼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와 우물 분쟁

이삭이 번성하자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 판 우물들을 막아버립니다. 우물은 그 지역에서 생존과 직결된 자산이었고, 물을 차지하는 일은 곧 삶의 터전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이삭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힘을 꺾고 이 지역에서 밀어내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결국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고 말하며 그를 내쫓습니다. 이삭은 아무런 대항 없이 그 말을 따릅니다. 그는 그랄 골짜기로 옮겨가고, 그곳에서 다시 우물을 팝니다. 아브라함의 종들이 파 놓았던 우물은 다시 판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이삭의 종들이 그것을 찾아냈을 때, 다시 블레셋 목자들이 와서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에섹이라 짓습니다. 이는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또 다른 우물을 팠을 때도 시비가 붙고, 그는 그 우물을 싯나라 부릅니다. 이는 원수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계속된 다툼과 억울함 속에서도 이삭은 싸우지 않습니다. 그는 언쟁하지 않고 다투지도 않습니다. 인간적인 기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땅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임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우물은 생명의 통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는 억울함을 참으며 계속해서 자리를 옮깁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양보와 평화의 우물

이삭은 다시 자리를 옮겨 세 번째 우물을 팝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투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 짓고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르호봇은 넓게 하셨다는 뜻으로, 다툼 없는 공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식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삭은 계속해서 양보하며 자신이 가진 우물을 포기했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에게 아무도 시비 걸지 않는 평화로운 우물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단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신뢰의 결과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분노하지 않았고, 가진 것을 뺏겼지만 복수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선택을 했던 이삭의 태도는 하나님의 복이 어떤 사람에게 머무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이삭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받을 복은 하나님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과 다투는 것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그에게 다툼 없는 평화의 공간을 열어주셨습니다. 믿음은 때로 억울함을 참는 것입니다. 믿음은 침묵으로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모든 것을 넓히시고 채우십니다. 이삭이 만난 르호봇은 단지 물을 얻은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평화와 회복의 자리였습니다.

결론

창세기 26:12–22은 믿음의 사람 이삭이 현실의 다툼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응했는지를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그는 복을 받아 번성했지만, 그 번성은 사람들의 시기와 공격을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 상황에서 사람과 다투지 않고, 우물을 뺏겨도 다시 파는 인내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싸워서 얻으려 하지 않았고, 양보함으로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는 넓은 곳에 이르게 됩니다. 이삭은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을 따랐고, 그 과정은 억울하고 손해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복이 머무는 자리로 이어졌습니다. 이 본문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원리를 보여줍니다. 억울할 때마다 대항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의 시기 앞에서 나를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방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일 뿐 아니라, 그 복을 지켜주시는 분이며, 우리가 물러날 때에도 그 자리에 하나님의 평화를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이삭은 다투지 않았고, 끝까지 기다렸고, 결국 르호봇이라는 이름의 우물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르호봇의 은혜가 열리기 위해서는 이삭처럼 양보하고 인내하며 믿음으로 한 걸음씩 옮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넓은 곳을 예비하시고, 평화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창세기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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