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이루는 출발점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단순히 인간적인 확신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대한 신뢰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삶의 전적 헌신입니다.
1. 믿음의 본질: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신뢰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그분의 성품에 대한 전적 신뢰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본으로 제시되며,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적인 신뢰로 나타났습니다. 로마서 4장 20-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근거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입니다.
2. 믿음의 대상: 삼위일체 하나님
믿음의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창조주시며 섭리자로 믿음의 시작과 끝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히 12:2).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중심으로,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을 통해 믿음의 확신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요 3:16). 성령은 믿음의 삶을 지속적으로 인도하시며, 우리 안에서 믿음이 자라게 하십니다(요 14:26).
특히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근거합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믿음은 인간의 공로나 행위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3. 믿음의 실천: 순종과 인내
믿음은 단순히 이론적 동의에 머물지 않고, 삶 속에서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참된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은 그의 믿음이 행위로 나타난 대표적인 예입니다(창 22장).
또한 믿음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 인내를 통해 더욱 견고해집니다. 야고보서 1장 3절은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가르칩니다. 믿음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고, 그분의 때와 방법을 기다리는 인내의 덕목을 포함합니다.
4. 믿음의 열매: 구원과 영생
믿음은 구원을 가져오는 통로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현재의 삶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믿음은 또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말하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등은 믿음이 삶 속에서 이루는 구체적인 열매입니다. 이러한 열매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5. 믿음의 원리: 은혜, 선택, 그리고 인도하심
믿음은 인간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부터 시작됩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믿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과 인도하심의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믿음은 또한 공동체 안에서 성장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4-25절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권면합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자라나는 장입니다.
결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삶
믿음은 단순히 구원받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전인적 삶을 의미합니다. 신자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며, 그분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매일을 살아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이 말씀처럼,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출발점이자 궁극적인 완성을 이루는 여정입니다. 하나님께 의탁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을 이루게 됩니다.
벤암미는 '나의 친척의 아들'이란 뜻이다. 소돔에서 도망친 롯이 동굴에서 지내다 둘째딸과 근친상간하여 낳은 아들이다. 소돔에서 나왔지만 소돔의 성향을 못했음을 보여준다. 벤암미는 암몬족속의 조상이 된다. 암모는 요단 동편 사해 동쪽에 거하며 살았다. 하나님은 암몬이 아브라함과 친척이 된다는 이유로 그곳을 기업으로 주었으니 다투지 말라 하신다. 큰 딸에서 낳은 모압을 낳고 모압족속의 기원이 된다.
용례
성경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다.
창세기 19: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모압과 암몬 족속들은 '롯의 자손들'로 불렸으며, 이스라엘과 친척관계였으나 원수처럼 행동한다. 이들은 후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영원히 사라진다.
대하 20: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시 83:7-8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사람이요 앗수르도 그들과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 (셀라)
성경에서 태초라는 뜻은 가끔씩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태초는 한자로 太初를 사용하며, 세상이 시작되는 처음을 뜻합니다. 비슷한 말로는 개벽, 시초, 대시, 창초(창조가 아님), 태시 또는 '맨 처음'이 있습니다.
성경속의 태초
개정개역에서 인용
태초로부터 1번
이사야 43: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태초에서 7번
열왕기하 19:25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잠언 8: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이사야 37:26 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이사야 40: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요한1서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한1서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한1서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태초에 5번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잠언 8: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히브리서 1:1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창세기 1장 1절고 요한복음 1장 1절의 공동첨과 차이점
창세기 1장 1정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고,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다.
창 1:1은 히브리에 베레쉬트이고, 요한복음이 태초에는 엔아르케이다. 번역된 문자는 동일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창세기 태초는 베는 시간이나 공간을 뜻한다. 레쉬트는 처음이란 뜻이다. 즉 처음의 시간이란 뜻이 된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1장 1절은 동일한 처음이지만, 엔아르케는 '아르케' 영원이고, '엔'은 영어의 in의 개념은 '영원 안'이란 뜻이다. 창세기는 행동의 개시를 뜻하며, 요한복음은 영원 안에 머물게 계심의 존재론적 표현이다.
그럼 다른가?
그렇지 않다. 창세기 1장은 영원 안에서 창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고, 요한복음 존재론적 표현은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심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과 존재론적 의미에서는 동일하나 강조하려는 의도가 다른 것이다.
시간과 영원은 대립되지 않는다. 시간은 영원 안에 있다.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므로, 시간도 영원안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고, 같은 것이기도 하다. 영원의 개념은 '나는 아브람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 속에서 담겨 있다. 주님은 이 말씀으로 부활논쟁을 종식시키키신다. 하나님은 영원 안에 계시므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든 것은 쇠태한다. 하지만 이것도 영원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사 62:4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면서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않고 헵시다 쁄라라 하리라고 약속합니다. 그렇다면 헵시바와 쁄라는 어떤 뜻일까요? 회복에 대한 약속이니 좋은 의미 일 겁니다.
헵시바는 헤프치-바(하)로 읽고, 쁄라는 베울라입니다. 헵시바의 뜻은 '나의 기쁨은 그녀 안에 있다'이며, 쁄라는 '결혼한 여성'입니다. 헵시바는 남편이 아내를 보고 하는 말이며, 그 아내가 쁄라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내로 소개됩니다. 그 땅이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결혼한 여자처럼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헵시바와 쁄라의 기쁨을 누리게 될 이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 남은 자를 말합니다. 구원을 노래할 때 예루살렘은 종종 딸로 표현되며, 아내로 표현됩니다.
고대 세계에서 남편이 없는 과부나 독립적인 여성은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쁄라'라 하리라는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어주고, 보호자가 되어 주겠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감사고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 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단어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단어는 한글의 순서에 따른 것이며,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중 의미 단어는 가장 중요한 단어를 먼저 실었습니다. 각 단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후에 차근차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의 단어 출처는 문서 하단에 링크해 두었습니다.
1. 가나(Kanah)의 뜻 '갈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지명으로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든 곳이다. 2. 가나안(Canaan)의 뜻 '자색', '낮은 지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으로 받은 지역이다. 레반토, 또는 팔레스타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3. 가드(Gath)의 뜻 '복', '행운' 블레셋 5개 성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 골리앗이 살았다고 한다. 4. 갓디(Gadi)의 뜻 '행운' 5. 갓디엘(Gaddiel)의 뜻 '하나님의 군대' 6. 갈멜산(Carmel)의 뜻 '동산', '과수원' 두로와 시돈 아래 자리한 산으로 '하나님의 포도원'이란 뜻이다. 7. 가룟 유다(이스가리웃 유다) (Iscariot Judas)의 뜻 '가리웃 사람 유다' 8. 가말리엘(Gamaliel)의 뜻 '하나님의 상급' 9. 가브리엘(Gabriel)의 뜻 '하나님의 영웅' 10. 가담(Gatam)의 뜻 '빈약한'
481. 이세벨(Jezebel)의 뜻 '고상한' 482. 이스라엘(Israel)의 뜻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 '하나님이 싸 운다', '하나님은 강하다' 483. 이스마엘(Ishamael)의 뜻 '하나님께서 들으심'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 얻은 아브라함의 첫 아들이다. 484. 이스보셋(Ishbosheth)의 뜻 '부끄러운 사람' 485. 이스위(isui)의 뜻 '같은 것', '닮다' 486. 잇사갈(Issachar)의 뜻 '자비를 베푸소서!', '값을 주실 것이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의 한 명이자 열두 지파 중의 한 지파의 이름이다. 487. 이스르엘(Jezreel)의 뜻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다' 이스라엘 북쪽 지파에 있는 평야의 이름이다. 488. 임마누엘(Immanuel, Emmanuel)의 뜻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약속이자 마태복음에 예수님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489. 입다(Jephthat)의 뜻 '그는 연다', '열리다', '하나님께서 여신다'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 중의 한명이다. 길르앗에서 활동했다. 490. 입산(Ibzan)의 뜻 '찬란한'
491. 삭굴(Zaccur)의 뜻 '순결' 492. 삭개오(Zacchaeus)의 뜻 '순수함' 493. 전례(Liturgia, ՋՅՉՔՏՕՑՃԿՁ)의 뜻 '공적 예배', '공적인 일'이라는 뜻. 여기서 liturgia는 라틴어이고 ՋՅՉՔՏՕՑՃԿՁ는 그리스어이다. 494. 스가랴(Zechariah)의 뜻 '야훼께서 기억하고 계시다' 495. 스룹바벨(Zerubbabel)의 뜻 '바빌론의 후예', '바빌론의 슬픔' 496. 스불론(Zebulun)의 뜻 '후한 선물'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중의 한 명이자 한 지파이 이름이다. 497. 시므리(Zimri)의 뜻 '어린양' 498. 시브(Ziv)의 뜻 '꽃의 달', '시브월' 499. 실바(Zilpah)의 뜻 '어리석은', '보호', 'Frailty' 500. 가데스(Kadesh)의 뜻 '거룩한 곳', '성별된 곳'
511. 토라(Torah)의 뜻 '교육' 512. 도마(Thomas)의 뜻 '쌍둥이' 513. 도벳(Topheth)의 뜻 '불사르는 곳' 514. 디메오(Timaeus, Timaios)의 뜻 '존경', '명예' 515. 디베료(Tiberius)의 뜻 영문으로 검색하면 하나같이 '테베레 강의 아들 (the son of Tiber)'로 나오는데, 한국 웹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좋은 관찰'이라는 뜻으로 퍼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좋은 관찰'이라는 뜻이 있는지 알 수 없다. 516. 두아디라(Thyatira)의 뜻 '티아의 성읍' 517. 바로(Pharaoh)의 뜻 '큰 집', '위대한 집' 518. 밧모(Patmos)의 뜻 '송진' 519. 뵈뵈(Phoebe)의 뜻 '순결' 520. 빌라델비아(Philadelphia)의 뜻 '형제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