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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 : 1 ~ 9 절 묵상

הלך 2025.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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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으신 하나님, 하나 되려는 인간

본문 요약

창세기 11장 1절부터 9절은 인간이 한 언어를 사용하며 하나가 되어 하나님 없이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바벨탑을 쌓으려 한 사건을 다룹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온 지면에 흩으심으로 마무리되며, 이는 인류의 교만과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본문의 구조

  1. 인류의 언어와 계획 (1–4절)
  2. 하나님의 반응과 조치 (5–7절)
  3. 심판과 흩어짐의 결과 (8–9절)

인류의 언어와 계획 (1–4절)

본문은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 문장은 창세기 10장에서 민족들이 땅에 흩어졌다는 구조와는 반대되는 흐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시간순이 아니라 주제 중심으로 배치된 기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11장은 하나님께서 왜 민족을 흩으셨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으로, 인간의 중심성에서 시작된 욕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동방으로 옮겨가다 시날 평지를 만나 그곳에 정착하고, 스스로 벽돌을 굽고 역청으로 성과 탑을 쌓자고 계획합니다. 이 장면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기보다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고 흩어짐을 면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여기서 “자기 이름을 내자”는 말은 인간이 본래 하나님께만 속해야 할 영광과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려는 시도이며, 이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었던 죄의 반복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따르기보다 공동체의 결속과 안정, 자기 중심적 목적을 앞세웁니다. 그들은 흩어짐을 두려워했지만, 사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고, 이는 인류가 온 땅에 퍼져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야 한다는 창조 명령의 연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땅을 충만히 하는 대신, 한 자리에 모여 위로 솟구치는 탑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이는 공간적으로는 위를 향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 없이 자신들의 존재를 높이고 싶어 하는 방향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이름이 놓여 있었고,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과의 단절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반응과 조치 (5–7절)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인간의 활동을 보시고 내려오십니다. 5절은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표현은 인간의 활동이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내려오셔야 할 만큼 미미한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 하나하나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직접 살피시며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시며, 인간의 연합이 방향을 잘못 잡았을 때 얼마나 큰 위험이 되는지를 지적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문제 삼으신 것은 인간이 협력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배제한 채 자신들의 이름을 세우는 목적을 위해 하나 됨을 꾀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창조주와의 관계 안에서 협력할 때는 그것이 곧 축복이 되지만,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않는 연합은 결국 교만으로 변질되고 파괴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반응은 단순히 심판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보호하려는 간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기로 결정하십니다.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문화, 사고방식까지 포함하는 깊은 연결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흩으신 것은 단지 대화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통합을 분산시키기 위한 근본적 처방이었습니다. 서로가 이해할 수 없게 됨으로써 인간은 자연스럽게 공동 목적을 이루기 어려워졌고, 이는 곧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흩어짐의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심판과 흩어짐의 결과 (8–9절)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고, 그들은 더 이상 그 도시를 건설하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단순한 방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회복시키는 조치였습니다. 인간은 흩어짐을 두려워했지만, 하나님은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다시 이끌어 내기 위해 언어를 나누고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9절은 이 모든 사건의 의미를 정리하며,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바벨”은 히브리어로 혼잡이라는 뜻과 연결되며, 동시에 이후 역사 속에서는 바벨론이라는 제국의 시초가 되는 장소가 됩니다. 바벨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이름을 내기 위한 시도로 시작되었고, 결국 하나님에 의해 혼란의 상징으로 남게 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로 읽을 수 없으며, 지금도 인간 사회에서 반복되는 교만과 자기중심적 연합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인간은 언제나 안정과 통일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없이 이루어질 때는 반드시 한계를 드러내고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은 인간의 발전을 멈추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걸음을 돌이키려는 회복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길 원하시며, 흩어짐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유효하게 역사합니다. 언어가 나뉘고 민족이 흩어진 것은 결코 저주로만 볼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양성 속에서도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신 계획의 일부입니다. 훗날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서 다양한 언어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장면은 바벨에서의 혼잡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다시 하나 됨으로 회복되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이처럼 바벨탑 사건은 단순한 분열의 사건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질서 회복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결론

창세기 11장 1절부터 9절은 인간이 하나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세우려 했던 시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과 조치를 기록한 사건입니다. 인간은 언어가 하나이고 마음이 하나라는 조건 아래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갔지만, 그 목적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이었기에 결국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을 심판하시면서도, 그 과정 속에 회복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흩어짐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인간을 다시 그 뜻 가운데로 이끄시기 위한 조치였고, 언어의 혼잡은 인간의 죄에 대한 징벌이자 새로운 질서의 시작이었습니다. 바벨탑은 지금도 우리 안에 반복되고 있으며,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욕망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돌이키게 하시며, 교만한 연합보다 순종 속의 흩어짐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지 하나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느냐에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교만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볼 수 있고, 동시에 하나님의 간섭이 어떻게 역사 전체를 회복으로 이끄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민족의 시작점일 뿐만 아니라, 복음이 어떻게 온 세상에 흘러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학적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언어와 민족을 초월하여 그분의 백성을 부르고 계시며,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리에서 바벨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성을 세워가야 합니다.

 

창세기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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